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빚이 많다고 자포자기할 것이 아니라 빚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하다. |
재무상담사에게 이런 깊은 사연들을 다 털어놓고 상담을 받으려면 제일 중요한 게 신뢰다. 미국 재무설계위원회(FPSB)가 2004년에 실시한 소비자조사에 따르면 고객이 재무상담사를 선택할 때 제일 중요하게 고려하는 사항은 신뢰(97%)라고 한다. 다음은 고객의 말을 경청하는가 하는 점(96%)이고, 그 다음은 상품 판매보다 상담을 중요시 하는 점(95%)을 꼽았다.
미국에서는 부부의 성생활보다 가정의 돈 문제를 남에게 얘기하는 게 더 불편하다고 한다. 우리 사회도 점차 그런 경향을 보인다. 돈 문제 가운데서도 빚 문제는 더욱 그러하다. 그러나 빚이 많다고 걱정만 한다거나 자포자기할 게 아니다. 전문가의 도움을 얻어서라도 빚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하다.
부채 목록만 13개 보통 남자가 사회생활을 더 많이 하는 터라 상담계약을 남자 고객과 한다. 포도에셋의 재무상담 원칙상 부부가 함께 상담을 진행해야 하는데, 이럴 경우 부인이 거세게 반발하는 경우도 있다. 가장 흔한 반응은 이렇다. "내가 돈을 어디 딴 데 썼다고 그러는 거요?” 물론 반대 경우도 있다. 남자에게 마이너스 통장 등 말 못할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.
김현아씨(가명·32)는 직장 선배 소개로 재무상담을 받기로 했다. 본인이 돈 관리를 맡고 있고 남편은 직장 일로 출장이 잦아 재무정보 수집은 부인하고만 진행했다. 재무정보 수집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이 대목에서 부인의 아픔이 있었다.
결혼 2년차 맞벌이 부부로 월 소득은 470만 원 정도 된다. 그런데 결혼 전부터 각자 어느 정도 빚이 있었다. 결혼 후 임대아파트로 들어가면서 부채가 더 늘어난 것을 감안하더라도 빚이 훨씬 더 늘어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. ‘2~3년 고생하면 다 해결되겠지’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게 문제였다. 1억 원이 넘는 빚, 부채 목록만 13개다.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만 가는 빚을 매달 열세 곳에 쪼개 갚아나가는 고통을 부인은 감내해야만 했다.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일이다.
재무설계 최대의 적‘잘 되겠지~’ 대부분 고객과 마찬가지로 이 가정도 정확한 계획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. 맞벌이로 소득이 제법 되니까 잘 해결될 거로 생각했다. 그러나 소득이 많고 계획이 없으면 지출도 늘어나는 법이다. 그런 상황에서 장래 계획은 전혀 없을 수밖에. 5년 후 임대아파트 분양자금, 남편의 대학원 학자금, 자녀교육, 대출 바꾸기, 은퇴 후 계획 등등. 듣는 재무상담사보다 말하는 고객이 더 앞이 캄캄해지는 눈치다. 더 힘들게 할 것 같아 말하지 않으려 했으나 원칙을 지키기로 했다. "이 상태에서 두 분 가운데 한 분이라도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한다면….” 보장성보험도 꼭 필요하다는 지적이다. 예비상담을 여기까지 하고 분석과 계획을 세우는 본상담 때는 남편도 꼭 함께 참석하기로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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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000만 원을 10년간 5% 고정금리로 대출 가정시 상환방식 비교 |
금리보다 중요한 건 상환계획 대부분 가정에서 대출 받을 때 우선 먼저 고려하는 것이 대출금리다. 제1금융권에서 가장 싼 금리를 찾는다. 물론 1%라도 금리가 낮은 대출을 고르는 게 중요하지만, 정말 고려해야 할 것은 상환계획이다.
대출도 은행에서 판매하는 하나의 금융상품이다. 따라서 자동차를 사거나 냉장고를 살 때처럼 대출상품도 꼼꼼히 비교 분석한 다음 결정해야 한다. 빌리기에만 급급하여 금리만 고려한다면 적잖은 손실을 볼 수도 있다.
만기일시상환, 원리금균등분할상환, 원금균등분할상환의 3가지 상환 방식에 따라 이자비용이 2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. 이자비용이 가장 작은 대출은 원금균등분할상환이다. 상환계획이 미리 잘 잡혀 있으면 자신에게 유리한 상환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.
지출 분석을 통한 상환계획 짜기 상환계획은 현재의 소득, 지출현황, 가용자금, 소득의 안정성과 증가율 등을 분석한 다음 가능한 월 상환액을 정하고, 이자비용을 최소한으로 가져가야 한다.
그러나 부채항목이 은행 외에 보험사의 약관대출, 제2금융권 대출, 지인의 개인사채, 회사복지기금대출 등 여러 항목에 걸쳐 있을 때에는 즉시 상환하여야 할 것, 우선 상환하여야 할 것, 장기 상환하여야 할 것, 현재 대출을 유지해야 할 것 등으로 상환 순서를 정할 필요가 있다.
소득을 분석한 결과 남편은 연구단지에서 근무하면서 현재 석사과정 중이며, 배우자는 사립학교 교사로 비교적 안정적인 소득과 증가세를 보인다. 지출은 미래를 위한 투자지출이 많았고 대출의 월 상환액 규모는 지출 대비 약 30%였다.
제시한 상환전략은 다음과 같다.
▲즉시상환대출 - 금융자산과 부동산 자산을 분석한 후 금융자산의 리모델링를 통하여 약 1130만 원의 가용자금을 확보하여 즉시 상환하여야 할 부채 정리.
▲우선상환대출 - 금융자산의 리모델링을 통한 기회비용 일부를 우선 상환하여야 할 부채에 투입.
▲장기상환대출 - 투자형태의 대출은 장기상환.
▲현 대출 유지 - 학자금 및 회사복지대출금 등 1~3%대의 저금리 대출은 유지.
새로운 대출상환 계획을 실행하게 되면 지출 대비 대출상환액 비중은 30%대에서 25%로 줄어든다. 또 연간 1690만 원을 상환해왔는데 5년 후에는 230만 원으로 감소하고, 이자비용도 1200만 원 정도 절감하게 된다.
무이자대출을 우선상환대출로 분류한 까닭은 상환계획을 단지 금융지식에 의해서만 짜지 않았다. 재무상담사와 고객의 인생관 교감에 따라 상환계획은 달라질 수 있다. 재무상담사는 남편의 누나에게서 빌린 무이자 빚을 장기상환이 아니라 우선상환으로 분류하자고 제안했다.
금리만으로 볼 것이 아니라, 부인이 지고 있는 시댁에 대한 정신적 부담을 덜자는 뜻이다. 상담사의 이런 설명을 들으며 남편도 부인의 그간 마음 고통을 이해하게 됐다. 상담결과 월 상환비용이 줄어들면서 자녀 교육자금, 남편 박사과정 진학비용, 위험관리 및 노후대비 저축이 점차 증가할 수 있게 됐다.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막연했던 부채 상환이 가능해지고, 장기저축과 주택구입 등 실행계획이 세세하게 잡혀 마음의 불안이 덜어졌다는 점이다.
보통은 빚을 숨기려 하고 구체적인 금액 또한 잘 밝히지 않는다. 한창 일할 수 있는 젊은 나이에는 부채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. 당당하고 자신있게 문의하고 검토할 때 다양한 해결방법이 떠오르고, 부채가 늘어나지 않게 된다.
이광구<포도에셋 기획팀장>